독서이야기

도서리뷰 - 황홀한 글감옥

푸르맨 2019. 7. 9. 16:46

 

황홀한 글감옥

 

 

 

 

 

저자 소개

 

조정래 (1943 ~ )

 

‘작가정신의 승리’라 불릴 만큼 온 생애를 문학에 바쳐온 조정래 작가는 한국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뛰어난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작가정신의 결집체라 할 수 있는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20세기 한국 현대사 3부작’으로, 1천 5백만 부 돌파라는 한국 출판사상 초유의 기록을 수립했다.

 
 

 

인상 깊었던 구절

 

P30. ‘말로 지은 원한은 백 년을 가고, 글로 지은 원한은 만 년을 간다.’

 

 

P36. 종교는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과학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학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P72. 글쓰는 작업은 오로지 혼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한정 긴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이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 철칙입니다.

 

P100. 모든 문학도들은 다 같이 그런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반드시 홍역을 앓아야만 어른이 될 수 있듯이 문학도도 그 고민의 늪을 무사히 건너야만 문인이 될 수 있는, 그것은 통과의례였습니다. 다만 각 개인에 따라 고민의 밀도나 농도의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보다는 무엇에 치중해야 한다.’

 ‘무엇은’ 써야 할 ‘내용’이고, ‘어떻게’는 쓰는 ‘형식’일 것입니다. 내용 앞에 형식이 나설 수는 없다는 인식이었습니다. 그 내용 중시의 의식은 우리의 처절하고 험난한 역사에 대한 인식과 발을 맞춘 것이기도 했습니다.

 

P104.  책 한 권을 읽는 데 이틀 걸렸으면 이틀을, 사흘 걸렸으면 사흘을 생각하는 일에 바치십시오. 

‘왜 그런 소재를 선택했을까.’

‘주제와 소재는 효과적으로 조화되어 있는가.’

‘주제의 형상화는 잘 이루어졌는가.’

‘사건 전개는 우연이나 조작적이지 않고 실감 있고 필연적인가.’

‘구성의 허술함이나 무리는 없는가.’

‘인물들의 개성과 생동감은 살아 있는가.’

‘문체의 특성은 무엇인가.’

‘감각과 묘사력은 특색이 있는가.’

‘결말 처리는 효과적이었는가.’

‘소설로서 성취도는 어느 정도인가.’

   ……..

   ‘아, 잘 썼다. 그치만 별 것 아니네.’

   ‘나도 딴 방법으로 얼마든지 쓸 수 있어.’

당신이 소설을 쓸 수 있으려면 아무리 좋은 작품을 읽었더라도 당신의 독후감은 늘 이래야 합니다. 그것이 객기든, 만용이든, 오만이든, 오기든 다 좋습니다.

 

P175.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무엇을 이루려고, 무엇을 바라며 그 고통과 외로움을 참아내며 이 길을 가고 있는가……이런 생각을 하염없이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글로 엮어져 가는 삶은 오로지 저만이 지을 수 있는 집이었고, 저만이 세울 수 있는 세계였습니다. 그보다 더 큰 의미는 없었기에 수도하듯 그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P195.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 

제 머릿속에서 정리된 논리였습니다. 그것은 작가가 지녀야 하는 가슴이고, 의식이었습니다.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가 없고서는 역사를 바르게 볼 수도, 진실을 캐낼 수도, 인간을 옹호할 수도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P205. 이 땅에 분단이 있는 한 남과 북에는 진정한 민주주의란 있을 수 없고, 인간다운 세상이란 요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길은 단 하나, 민족 통일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P220.. 상식적인 얘기지만 주제와 소재가 정해지면 구성은 그때부터 자동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때 아주 빠른 속도로 전체 얼개가 짜이게 됩니다. 그것이 1단계 구성일 것입니다. 그다음 필요한 책들을 구하고, 섭렵하면서 구성은 차츰차츰 구체화되어 나갑니다. 그것이 2단계일 것입니다. 그다음 단계로 현장 취재를 하면서 구성은 더욱 치밀해집니다. 그것이 3단계입니다. 그리고 책들과 현장 취재수첩들을 총정리하면서 이야기는 한층 더 조밀하게 짜이게 됩니다. 그것이 4단계인데, 이때는 주인공들이 대부분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5단계의 총정리가 이루어집니다. 이때는 전체의 사건과 그에 알맞은 인물들의 역할까지 머릿속에 정연하게 정리되어 빨리 글로 씌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P247. 저는 세 편의 대하소설에 ‘무엇을 쓸 것인가’하는 중요성에 못지 않게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고심했습니다.

 

P257. 그들을 감동시키려면 그들의 두 배,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바쳐야 한다! 그래서 저는 20년 동안 글감옥에 갇혀 ‘먹고, 자고, 쓰고’가 연속되는 생활 속에서 정말 16시간의 노동을 다 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저와의 약속을 지켜 제자신을 이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P317. 대하소설을 쓴다는 것은 세 가지의 3단계 싸움이 아닌가 합니다. 자료와의 싸움, 인물들과의 싸움, 길이와의 싸움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대하소설을 준비하는 과정은 첫째, 시대 선택, 둘째, 새롭게 할 이야기 설정, 셋째, 자료 모으기입니다. 

자료 모으기는 첫째, 필요한 모든 책 섭렵하기, 둘째 무대가 될 땅의 직접 취재, 셋째, 자료의 취사선택입니다. 

여기서 ‘섭렵’이라는 말에 유의하십시오. 그것이 어떤 책, 어떤 인쇄물이든 간에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면 다 모으고 다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읽어나가면서 중요한 것들의 강도에 따라 볼펜의 색깔을 달리하고, 기호를 달리해가며 표시를 하십시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그 사항들을 반드시 노트에 옮겨 정리하되, 자료마다 책의 페이지를 표시하십시오. 절대로 머리로 기억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기억력을 과신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P360.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인식을 투철하게 하면 오늘의 가난은 이 시대에 응답하는 가장 좋은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P379. 첫째, 지식인의 삶을 충실히 살다 간 분들의 전기나 평전을 골라 읽으십시오. 둘째,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인의 책과 글을 골라 읽으십시오. 셋째, 진정성을 가진 시민단체를 골라 틈틈이 자원봉사를 하며 실천 경험을 쌓고, 성취의 보람 속에서 안목을 더욱 넓혀 가십시오.

 

P414.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불행을 느끼지 않을 때가 바로 행복한 때라고 대답합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불행할 때보다 행복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탐욕은 늘 저 먼 데를 보고 있어서 바로 눈앞에 있는 행복을 못 보는 것입니다.

 
 

 

책 소감 및 추천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정글만리>> 등 조정래씨가 쓴 대하소설과 장편소설의 양은 대단하다. 작품에 대해 논하기 전에 집필한 양에서부터 다른 작가와는 명확한 경계를 긋는다. 이 책은 조정래 작가의 자전적인 에세이다. 20년간 하루 16시간씩 글쓰기에 몰두했던 조정래씨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 소명, 철학이 담겨 있다. 조정래 작가는 편하게 읽힐 수 있는 문체로 유명하다. <<태백산맥>>에서의 처음 들어보는 사투리 대사들도 쉽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읽는 리듬을 고려한 조정래 작가의 작문 스타일 덕분이다. 이 책 또한 쉽게 읽힌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하나가 쉽게 넘길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었다. 

 

 

요즘 인문학을 공부하는 ‘함께성장연구원’에서 글쓰기를 공부하고 있다. 하나의 주제를 잡아서 나만의 책을 써보고 싶은 욕구는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걸리는 문제는 ‘주제’이다. 조정래 작가의 말대로 ‘어떻게 쓸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쓸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봐도,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봐도 쓸만한 내용들은 많다. 하지만, 지금 쓰고 싶은 하나의 ‘무엇’을 정하는 것이 아직도 힘들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주제와 소재가 정해지면 구성은 그때부터 자동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 page 220, <<황홀한 글감옥>>에서 ) 

 

글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는 주제와 소재가 정해지면 자동으로 풀려나간다. 책의 목차나 책 속의 글 꼭지들을 정하기 위해선 내가 ‘무엇’을 써야 할 지에 대하여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조정래 작가의 경우에는 ‘반 봉건주의를 통한 진정한 시민 민주주의 사회 구현’이라는 사명감이 있다. ‘근대사’를 다른 그의 대하소설은 이러한 작가의 주제의식이 명확하게 반영된 산출물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중 ‘하 진’이라는 중국계 미국인 작가가 있다. 지금까지 그의 소설 중, <<광인>>과 <<멋진 추락>>을 읽어봤는데 둘 다에서 드러나는 건 ‘미국사회에 정착하는 중국인들의 삶의 애환’이다. 미국사회에 이민 온 중국인들의 속사정을 소재로 하여 현재 중국사회의 모순점과 미국사회의 모순된 모습을 적절하게 보여준다. 작가의 일관성 있는 주제의식은 독자에게 작가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그 사항들을 반드시 노트에 옮겨 정리하되…

( page 317, <<황홀한 글감옥>>에서 )

 

오래 전부터 익히고 싶은 기술이 있다. ‘노트 정리’이다. 학창시절부터 부단히 노트 정리를 했었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필요한 사항들은 나름대로 노트 정리를 했다. 내가 정리한 노트가 제 역할을 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기록을 남긴다는 건 먼 미래에 들추어볼 수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전제이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그 기록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다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는 열심히 메모는 하지만, 뒤돌아서면 잘 보지 않는다. 나중에 필요해서 찾으려고 해도 찾기가 어렵고, 노트에 정리된 내용끼리의 연관성을 보기가 어렵다. 책에서 봤던 역사가들의 기록처럼 방대한 기록을 지금 내가 한다면, 10장 내외의 역사책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해서 베껴 쓴 글과 자신의 생각을 구분해서 정리해야 하는 게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철학자 ‘강유원’씨도 비슷한 내용을 언급해서 중요하다고 메모해놨었는데, 이 부분을 실행에 옮겨야겠다. 책을 읽고 정리하고 제대로 된 기록을 하는 습관만 체득해도 지금보다는 더 많은 의미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불행을 느끼지 않을 때가 바로 행복한 때라고 대답합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불행할 때보다 행복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탐욕은 늘 저 먼 데를 보고 있어서 바로 눈앞에 있는 행복을 못 보는 것입니다.( page 414, <<황홀한 글감옥>>에서 )

 

 

불행을 느끼지 않을 때가 바로 행복한 때라는 그의 대답이 가슴에 와 닿는다. 70대의 노인에게서 나올 수 있는 삶의 지혜 같다. 더 행복해지려고 매일같이 노력하고 일한다. 하지만, 정작 현재 주위에 있는 행복은 보질 못한다. 입만 열면 이루고 싶은 행복과 거기에 못 미치는 현재에 대한 푸념만 들린다. 도대체 언제 행복할 수 있을까? 그의 글은 거기에 대한 답을 해준다. ‘불행을 느끼지 않을 때가 바로 행복한 때’이다. 현재를 살면서 내 삶에서 불행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왜 난 더 행복하길 바라는 걸까? 물론 꿈꾸는 걸 멈추고 싶진 않지만, 그 전에 내게 주어진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게 순서이다. 글쓰기 뿐 아니라 인생에 대해서도 한 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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