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

도서 리뷰 -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

푸르맨 2019. 3. 25. 23:04

 

저자 소개 - 김용규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몰두했고,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위르겐 몰트만과 에버하르트 융엘의 강의를 들었다.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선택하고 그것을 향해 스스로 변화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본분이라 여기며, 대중과 소통하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해 왔다.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깊이 있는 성찰에 생동감 있는 일상적 문체가 어우러진 다양한 대중 철학서와 인문 교양서를 집필했고, ‘지식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IVP), 『데칼로그』(포이에마),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휴머니스트), 『생각의 시대』(살림), 『설득의 논리학』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 2』 『알도와 떠도는 사원』(공저, 이상 웅진지식하우스), 『철학통조림 1-4』(주니어김영사), 『영화관 옆 철학 카페』(이상 이론과실천), 『다니』(공저, 지안) 등이 있으며, 『신』의 연작으로 『그리스도』와 『성령』(가제, IVP 근간)을 준비하고 있다.

 

책 소감

 문학 작품을 통해 서양 철학의 흐름을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처음 들어보는 철학자들의 이름이 종종 나와 조금 어렵긴 했지만 문학 작품에 대한 이용규 작가만의 알찬 해석 덕분에 끝까지 읽었다. 나는 문학작품과 철학에서 정말 멀리 떨어져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책 속에서 소개된 대부분의 문학들을 읽어보질 않았다니… 그나마 읽었던 소설이 <<어린 왕자>>와 <<당신들의 천국>>, <<변신>> 정도였다. 읽었던 책을 소재로 철학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과거에 그 책의 내용이 이런 뜻이었구나 하고 새롭게 다가와 다시 그 책들을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특히 <<어린 왕자>>의 경우에는 그 내용이 사람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처음 알았다. 중고등학교 때 필독서에서 읽었던 소설이 그런 심오한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음을 보고 역시 책이란 읽는 시기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거란 걸 새삼 깨달았다. 대학시절 손을 떼지 못하고 읽었던 <<당신들의 천국>>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오랜 친구를 만나듯 반가웠다. 이청준 선생님을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이용규 작가 또한 호평을 하는 걸 보며 속으로 맞장구를 쳤다. <<파우스트>>나 <<오델로>>,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이 어렸을 때부터 명작이라고 듣기만하고 쉽게 손을 대지 못했던 책들의 내용을 카메라의 조리개처럼 어디에 초점을 가지고 봐야 하는 지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파우스트>>의 경우 괴테가 20대에 1부를 저술하고 70대에 2부를 저술했다는 이야기도 처음 알았다. <<파우스트>>의 1부와 2부가 전혀 다른 관점의 구원을 나타내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대학 시절 연극부 활동을 할 때, 다른 단원들로부터 종종 들었던 유명한 연극이다. 한번은 꼭 보고 싶었는데, 아직까지 보질 못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의 그 아무런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기다림의 의미도 새삼 다르게 보였다. 

 

 대학 시절 교양 수업으로 서양 철학사를 들었었다. 당시 교수님도 꽤나 재미있는 분이셔서 전공수업보다 애착을 가지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후로 20년 가까이 지나서 처음 읽는 교양 철학서적이어서 그런지 조금 생소하게 느껴졌다. 철학가들의 이름과 변화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들의 흐름을 보면서 마치 서양 철학을 유람하고 온 기분이 들었다. 읽고 나서 ‘재미있었다’, ‘다시 한번 읽고 싶다’ 라는 솔직한 평이 나왔다.

 

 아직 서양 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름대로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의 분명한 차이가 느껴졌다. 동양 철학은 ‘사회’, 즉 ‘관계’에 대한 사유가 더 많은 반면, 서양 철학은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사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나름의 방향을 잡고 문학과 철학을 다시 한번 관심 있게 보게 되었다.

 

내가 작가라면

 현대 문학에 대한 부분도 추후 다루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 고전을 통한 철학 이야기도 분명 너무 재미 있게 읽었다. 독자로서의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보다 친숙한 현대 문학 작품에서 나타나는 철학 이야기도 궁금하다. 이미 오래 전 대부분의 철학 사상들이 정립되었다. 대부분의 철학 사상들이 정립된 현 시대의 문학들은 어떤 철학 사상에 더 많이 집중하고 있는 지 비교해서 풀이해주는 책이 나온다면, 매우 관심 있게 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평가와 추천 이유

 이 책을 통해 ‘김용규 작가’에 대해 처음 알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인터넷 서점을 통해 작가의 다른 책을 살펴 보았다. 한 책을 읽고 나서 작가의 다른 책들을 보고 싶은 이유는 철학이라는 현실과 심리적 거리가 동떨어져 보이는 학문을 현실을 잘 반영한 문학을 통해 독자들과 보다 가깝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인상 깊었던 구절

P31. 키르케고르는 “죄의식이 나타나자마자 도덕은 뉘우침에서 좌절한다. 왜냐하면 뉘우침은 최고의 도덕적 표현이지만, 동시에 최고의 자기부정이기 때문이다.”

 

P49. 낭만주의는 계몽주의가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추상적 개인(Man)’을 보았던 곳에서 욕망과 쾌락에 몰두하는 ‘구체적 인간(man)’을 발견했지요. 그럼으로써 자기실현이라는 개인주의적 가치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20세기 전반을 휩쓸었던 실존주의라는 후계자를 낳은 거지요.

 

P67. 인간의 내면에서, 부성적 양심은 끊임없이 “네가 잘못하면 너는 네 잘못의 결과를 피할 수 없고, 내 마음에 들고 싶으면 너는 너의 생활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모성적 양심은 “어떠한 악행이나 범죄에도 너에 대한 사랑, 너의 삶과 행복에 대한 나의 소망을 빼앗지 못한다.”라고 말한다는 거지요. 

 

P73. “하지만 네가 내 크기를 알기 전에는 난 내가 얼마나 큰지를 몰랐어. 네가 내 나이를 알기 전에는 난 내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도 몰랐지. 네가 내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기 전에는 난 내 모습이 어떤지도 몰랐어. 더구나 네가 내게 말을 걸기 전에는 난 말도 할 줄 몰랐단다. 그래서 만일 네가 없다면 난 다시 내 크기를 모르게 될 거야. 내 나이도 잊게 되겠지. 내 모습도 볼 수 없을 거야. 난 다시 벙어리가 된단다. 넌 내 거울이야. 나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지. 넌, 이 넓은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란 말이야.”…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상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떤 것이 소중한 것은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상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P77. 외로움의 원인이 ‘사람이 없음’ 때문이 아니라, ‘사랑의 없음’, 곧 ‘관계의 없음’ 때문임을 뜻하기 때문이지요.

 

P79. 혹시 조종사와 어린 왕자가 만난 곳은 사하라 사막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곳, 누구나 외로워하면서도 누구하고도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는 이곳, 수많은 사람과 만나면서도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바로 이곳이 아닐까요? 한번 생각해보시죠. 오르텅스 블루의 시<사막>과 함께 말입니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P83. “나의 꽃이 되어준 그 장미꽃은 한 송이지만, 수백 송이의 너희들보다 나에겐 더 중요해. 왜냐하면 그 꽃은 내가 직접 물을 주고 유리덮개를 씌우고, 바람막이를 세워주고, 그 꽃이 다치지 않게 벌레까지 죽였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투덜댄다거나 뽐낼 때, 심지어 토라져 아무 말도 안 할 때에도 나는 귀를 기울여주었어. 그건 바로 내 장미꽃이니까.”…중요한 건 절대 눈에 보이지 않아….”네 장미를 그렇게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네가 장미를 위해 정성 들여 쏟은 시간이야.”

 

P111. ‘진화심리학적 질투’는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가려는 제3의 경쟁자가 있을 때에만 일어나지요. 하지만 경쟁자가 없는데도 일어나는 존재론적 질투, 즉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상대를 완전하고 철저하게 소유할 수는 없는 데서 오는 쓸쓸함과 허전함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갖게 된다는 말이지요.

 

P112. 사랑이란 ‘하는 것’이지 ‘갖는 것’이 아니며, 그 대상은 ‘행위의 대상’이지 ‘소유의 대상’이 아닌 겁니다.

 

P113. 어떤 대상을 소유한다는 것은 언제나 그 대상을 구속하고 감금하고 또는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답니다. 

 

P114. 프롬은 소유하지 않는 사랑, 함께 향유하는 사랑을 권합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유양식’으로서의 사랑이 아닌 ‘존재양식’으로서의 사랑이지요. 이런 사랑은 ‘갖는 사랑’이 아니고 ‘하는 사랑’이며, ‘받는 사랑’이 아니고 ‘주는 사랑’이고, ‘이기적 사랑’이 아니고 ‘이타적 사랑’입니다.

 

P118. 가정에서만큼은 누구든 자신의 ‘어떠어떠함’, 즉 외모나 성격, 재능 또는 재산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어떠어떠함’에 관계없이 그의 ‘있음’ 그 자체로써 인정받고 사랑받기 때문이지요.

 

P125. 자본주의 본질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개인의 이기심과 체계적인 이윤 추구의 정당화’입니다.

 

P129. 마르셀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가족적’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했지요.

 

P130. 존재란 ‘공동존재’를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나의 존재를 인정해줄 너’, ‘너의 존재를 인정해줄 나’, 즉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상호적 관계의 공동체 안에서만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만남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성찰과 만납니다.

 

P131. 가족을 통해서 나는 최초로 세계 안에서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함께’ 있다는 나의 ‘공간적 확장’을 깨닫게 되며, 부모들이 나에게 관여하듯이 나도 그들과 나의 아이들에게 관여되어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써 나의 ‘시간적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는 거지요.

“가족은 존재자들을 존재하게 하는 그 무엇이라는 점에서 존재의 진리라고도 할 만하다. 가족이라는 존재 진리에 근거하지 않은 존재자들은 상상할 수 없다. 이러한 범주를 통해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가족적’이어야 한다.” –마르셀의 <<여행하는 인간>>

 

P152. 인간이 되려면 인간적으로 행위 하라는 것이 바로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실존의 의미입니다.

 

P153. ‘반복’은 전향적 자세로 과거를 상기하는 것이자 후향적 자세로 미래를 대망하는 것, 즉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예정을 모두 현재에 실현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이것은 아우구스투스의 시간론과 비견되는 심오한 기독교적인 사유이지요.

 

P156. 앙가주망은…즉, 인간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어떤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은 물론이고, ‘어떤 것에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잡아매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앙가주망이란 현재 상태로부터의 ‘자기 해방’인 동시에, 스스로 선택한 상태로의 ‘자기 구속’인 거지요…. 키르케고르의 말

 

P165. 하이데거는 권태란 자신의 ‘존재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염려하는 현존재로서의 인간이 가지는 가장 ‘근본적인 기분’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구조는 ‘붙잡고 있음’이자 동시에 ‘공허 속에 놓아둠’이라 했지요.

 

P200. 카뮈는 자신의 모든 노력이 무의미함을 알면서도, 그 어떤 희망도 없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거나 회피하지도 않고, 언제나 다시 굴러 떨어질 자신의 운명을 향해 다시 돌아서는 시지프의 모습에서 부조리에 정면으로 ‘반항하는 인간’의 당당한 자세를 찾아낸 거지요.

 

P209.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마치 그런 것처럼’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서영은이 말하는 사막을 건너는 비법이라는 말입니다.

 

P250. 이상욱은 조 원장에게 보낸 편지에 “원장님께서 저들의 천국을 원하신다면, 이 섬의 진정한 주인이어야 할 저들에게도 그들 스스로 자기들을 시험해볼 기회를 주십시요.”라고 쓴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천국은, 곧 타인이 설계하고 추진한 유토피아는 ‘당신들의 천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설사 행복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디스토피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이 정의한 디스토피아의 의미이지요.

 

P320.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시간은 상기의 힘에 의해서 과거, 현재, 미래가 우리의 마음 안에서 나란히 겹쳐 놓여짐으로써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는 심리적이고 초자연적인 시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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