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

도서리뷰 - 신영복의 강의

푸르맨 2019. 3. 25. 02:06

 

 

저자 소개 - 신영복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복역한 지 20년 20일 만인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2006년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재직하였다. 

저서로『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신영복의 엽서』,『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청구회 추억』,『변방을 찾아서』,『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더불어숲-신영복의 세계기행』,『처음처럼-신영복의 언약』,『신영복(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등이 있으며, 역서로 『외국무역과 국민경제』, 『사람아 아, 사람아!』, 『노신전』(공역), 『중국역대시가선집』(공역) 등이 있다. 

 

책 소감

 

고전을 읽는 이유는 지식적인 확장이 아닌 감성적인 확장이다.
사상의 존재 형식은 담론이 아니라 실천이다.(Page 510.)

 

이 책은 동양철학의 주요 고전들을 현대의 생활과 사회와 연결 지어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거리들을 들추어 낸다. 완독하는 데 1달은 족히 걸렸던 거 같다. 읽다 보면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고, 그러다보면 읽는 속도가 나지 않는 그런 책이다.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진짜 독서(?)를 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춘추전국 시대와 같이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안정시키고자 발생한 동양 철학들은 ‘사회를 안정시키고, 인간 사회를 보다 낫게 하고자’ 하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다만,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나 다를 뿐이다. 다른 관점들을 오랜 시간이 지난 현대 시대의 현상들을 비추어보는데 실질적 도움이 된다.

 

(P428.) 난세의 징조는 그 옷이 화려하고, 그 모양이 여자 같고, 그 풍속이 음란하고, 그 뜻이 이익을 좇고, 그 행실이 잡스러우며, 그 음악이 거칠다. 그 문장이 간사하고 화려하며, 양생에 절도가 없으며, 죽은 이를 보내는 것이 각박하고, 예의를 천하게 여기고, 용맹을 귀하게 여긴다. 가난하면 도둑질을 하고, 부자가 되면 남을 해친다. 그러나 태평 시대에는 이와 반대이다.

 

<<순자>>에 나온 난세에 대한 문구들을 읽으면서, 현재 살고 있는 우리의 시대가 난세에 훨씬 가까움을 부정할 수 없었다. 많은 학자들이 문제시 했던 난세의 모습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러한 난세에서 태평 시대를 열기 위한 학자들의 치열한 고민 끝에 얻은 지혜들을 현재의 삶에 반영하여 볼 수 있었다. 

 

 

책 평가 및 추천 이유

이 책은 단순히 동양 고전이나 철학을 쉽게 설명해준 ‘인문학’ 책이 아니다.

갖가지 동양 철학을 접할 수 있음도 좋다. 

책을 읽으면서 신영복 선생님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과 기준을 볼 수 있었다.

쉽게 풀어놓은 인문학 책들도 많이 있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다만, 스스로 고기를 잡는 법을 깨우치도록...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고전을 읽을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한다.

누구에게라도 유익한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인상 깊었던 구절들

 

P72. 한마디로 무일은 불편함이고 불편은 고통이고 불행일 뿐이지요.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라는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P101.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P102. 자기의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양학에서는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체의 능력은 개체 그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 딛고 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고 하는 생각이 바로 [주역]의 사상입니다.

 

P103. 내가 중간을 선호하는 이유는 앞과 뒤에 많은 사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가 가장 풍부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P123. 산지박괘에서는 상구가 최후의 양심, 최후의 이상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경우뿐만 아니라 한 사회, 한 시대의 양심과 이상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는 메시지를 선언하고 있습니다….혼돈 세상에서 사상적 순결성과 지조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으로 풀이되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어려운 때일수록 현명한 판단과 의지가 요구된다는 윤리적 차원에서 읽힙니다.

 

P129. 속도와 효율성, 이것은 자연의 원리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자본의 논리일 뿐입니다….우리는 생산물의 분배에 주목하기보다는 생산 과정 그 자체를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는 과제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P131. 절제와 겸손이란 자기가 구성하고 조직한 관계망의 상대성에 주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우리의 삶이란 기본적으로 우리가 조직한 ‘관계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P144. ‘학이시습지’의 습은 실천의 의미로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시의 의미도 ‘때때로’가 아니라 여러 조건이 성숙한 ‘적절한 시기’의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P152.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강조되고 있는 전문성 담론이 바로 2천 년 전의 노예 계급의 그것으로 회귀하는 것임을 반증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논어]의 이 구절을 신자유주의적 자본 논리의 비인간적 성격을 드러내는 구절로 읽는 것이 바로 오늘의 독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P154. 정치란 바로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형은 인간관계의 잠재적 가능성을 가두는 것이며 반대로 예는 인간관계를 열어놓음으로써 그것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우는 구조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159. 미는 글자 그대로 양(羊)자와 대(大)자의 회의입니다. 양이 큰 것이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고대인들의 생활에 있어서 양은 생활의 모든 것입니다. 생활의 물질적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한마디로 양은 물질적 토대 그 자체입니다. 그러한 양이 무럭무럭 크는 것을 바라볼 때의 심정이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그 흐뭇한 마음, 안도의 마음이 바로 미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우리말의 뜻은 ‘알 만하다’는 숙지성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름다움’의 반대가 아름다움입니다. 오래되고, 잘 아는 것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P162. [논어]의 이 화동론은 근대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용과 공존의 논리입니다. 반면에 동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P166.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또는 이웃이 생긴다는 뜻입니다….’상호불여신호’라는 글이 있습니다.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백범의 이 구절에 ‘신호불여심호’를 추가한 사람이 있습니다…신체가 건강한 것보다는 마음 좋은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심호불여덕호’가 그것입니다. “마음 좋은 것이 덕 좋은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덕의 의미는 [논어]의 이 구절에 나와 있는 그대로입니다. 이웃입니다. 이웃이란 그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입니다.

 

P174.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알려고 하는 그 사람이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그를 알기 위해

서는 그가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연의 대상물과는 달리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나를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서로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쌍방향으로 열려 있어야 합니다. 나와 관계가 있어야 하고 나를 사랑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애정 없는 타자와 관계없는 대상에 대하여 알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P176. 부귀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그것을 누리지 않으며, 빈천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이 아니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P178. 사회의 관계망과 역사의 관계망, 즉 시공을 관통하는 관계망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그러한 망을 뜨개질하는 것이 근본적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들은 우리들의 천민 의식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지 않는 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P173. 안연에게는 인이란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답변하였고 중궁에게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하는가 하면, 사마우에게는 인이란 말을 더듬는 것이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여러 가지 답변에 공통되는 점이 타인과의 관계라는 사실입니다….”자기가 한 말을 실천하기가 어려우니 어찌 말을 더듬지 않겠는가”...

 

P174.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알려고 하는 그 사람이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P182. 배우면 완고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지요. 학學이 협소한 경험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학이란 하나의 사물이나 하나의 현상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기 경험에 갇혀서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읽지 못할 때 완고해지는 것입니다.

 

P193. [논어]는 앞에서도 이야기했습니다만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의 보고입니다. 춘추전국시대는 고대국가가 출현하는 시기이며 따라서 당시의 백가들은 당연히 사회론에 있어서 쟁명을 하였지요. [논어]는 그러한 담론 중에서 사회의 본질을 인간관계에 두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P198. 형식을 먼저 대면하고 내용은 결국 만나지 못하는 구조 속에 놓여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도 이러합니다. 속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그저 거죽만을 스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P200. 이상적인 교육은 놀이와 학습과 노동이 하나로 통일된 생활의 어떤 멋진 덩어리(일감)를 안겨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무엇을 궁리해가며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그러한 것인데 즐거움은 놀이이고 궁리는 학습이며 만들어내는 행위는 노동이 되는 것이지요.

 

P212. 많은 연구자들의 일치된 견해는 공자의 인이 맹자에 의해서 의의 개념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중심 사상이 인에서 의로 이동했다는 것이지요. 인과 의의 차이에 대해서 물론 논의해야 하겠지만 한마디로 의는 인의 사회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인과 의의 차이가 곧 공자와 맹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이 개인적 관점에서 규정한 인간 관계의 원리라면 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간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P284. 첫째는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물이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 둘째는 다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P287. [노자]가 군주학이 될 수 없는 가장 근본적 이유가 이와 같습니다. 패권 경쟁의 무도한 작위를 철저하게 반대하는 것 그것이 민초들의 정치학인 셈이지요.

 

P289.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 ‘바다’입니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입니다. 낮기 때문에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바다’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지요. 큰 강이든 작은 실개천이든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임으로써 그 큼을 이룩하는 것이지요. 제66장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바다가 모든 강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더 낮추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P295. 요컨대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품성은 백성, 즉 민중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P296. ‘기귀언 공성사수’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귀언은 물론 말을 아끼는 것입니다. 공성사수, 즉 일이

성취되더라도 말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기가 이룩한 일을 생색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해석은 귀언은 불언이나 무언이기보다는 오히려 불간섭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간섭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이 성취되는 것이 중요하고, 더욱 중요한 것은 다음 구절인 ‘백성개위 아자연’입니다. 백성들이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 공을 이루었으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라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백성개위 아자연’, 즉 모든 성취는 백성들이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믿게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P300. 가장 중요한 원칙 문제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있어서는 구태여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작은 일에 매달리고 그 곧음을 겉으로 드러내게 마련이지요. 어떤 분야든 최고 단계는 특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좁은 틀을 시원하게 벗어나 있게 마련이지요.

 

P309.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P311. ‘소요유’는 글자 그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입니다….동작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장자의 소요유는 ‘궁극적인 자유’, 또는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입니다.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소요유의 의미이고 나아가 장자 사상의 핵심입니다.

 

P328. 장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물의 필연성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즉 도의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과의 합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장자의 이리화정입니다. 도를 깨닫는 것은 이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지요. 정서적 공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P334. 불치병자가 밤중에 아기를 낳고 급히 불을 들어 살펴보았다. 급히 서두른 까닭은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서였다….어쨌든 선생들은 결과적으로 자기를 배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지요. 자신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거나 자기의 일그러진 모습을 정확하게 인식하기가 어려운 처지에 있기 때문이지요. 자기를 기준으로 남에게 잣대를 갖다 대는 한 자기반성은 불가능합니다.

 

P366. 맹자에 따르면 “묵가는 보편적 사랑을 주장하여 정수리에서 무릎까지 다 닳아 없어진다 하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P374. 사회의 혼란은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다른 나라를 자기 나라 보듯이 하고, 다른 가家 보기를 자기 가 보듯이 하고, 다른 사람 보기를 자기 보듯이 해야 한다.

 

P376. ‘애인약애기신’이 그것입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구절이 그것입니다. … 겸치’별란’ 겸애하면 평화롭고 차별하면 어지러워진다는 뜻이며…이 별別이야말로 공동체적 구조를 파괴하는 가장 근본적인 해악이라는 것이지요. 

 

P388. 인간의 행동은 욕구로부터 나오며 욕구는 후천적으로 물들여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백지와 같은 마음이 ‘마땅하게 물들여져야’ 도리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P394. 묵자는 결코 일방적인 사랑이나 희생을 설교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맺고 있는 상호 관계를 강조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관계의 본질이라고 주장합니다.

 

P423. 순자가 교육론을 전개하는 것은 첫째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모든 인간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자기의 욕구 충족이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된다는 성악적 측면이 순자의 교육론의 출발점이 되고 있으며, 성인이나 폭군이나 군자나 소인이나 그 본성은 같은 것이며, 세상의 모든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인간관이 되고 있습니다.

 

P428. 난세의 징조는 그 옷이 화려하고, 그 모양이 여자 같고, 그 풍속이 음란하고, 그 뜻이 이익을 좇고, 그 행실이 잡스러우며, 그 음악이 거칠다. 그 문장이 간사하고 화려하며, 양생에 절도가 없으며, 죽은 이를 보내는 것이 각박하고, 예의를 천하게 여기고, 용맹을 귀하게 여긴다. 가난하면 도둑질을 하고, 부자가 되면 남을 해친다. 그러나 태평 시대에는 이와 반대이다.

 

P452. 현실을 본뜬 탁을 가지러 도서관으로 가거나 인터넷을 뒤지는 것이지요. 현실을 보기보다는 그 현실을 본뜬 책을 더 신뢰하는 것이지요. 발은 현실이라고 한다면 여러분도 발로 신어보고 신을 사는 사람이 못 되는 것이지요.

 

P510. 사상의 존재 형식은 담론이 아니라 실천인 것입니다… 사상의 최고 형태는 감성의 형태로 ‘가슴’에 갈무리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성은 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일차적이고 즉각적인 대응이며 그런 점에서 사고 이전의 가장 정직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성적 대응은 사명감이나 정의감 같은 이성적 대응과는 달리,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이러한 정서와 감성을 기르는 것은 인성을 고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면서 최후의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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