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

도서리뷰 <<두근두근 내인생 >>

푸르맨 2019. 3. 5. 00:44

 

저자 소개 - 김애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한무숙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달려라, 아비』 프랑스어판이 프랑스 비평가와 기자들이 선정하는 ‘주목받지 못한 작품상’을 받았다.

 

책 소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아이와 가족 이야기, 어찌 보면 TV 드라마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소개라고 생각이 든다. 지나치게 눈물 바다를 만들어 낼 수도, 또는 지나치게 교훈적인 내용으로 충분히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소재이다. 하지만, 김애란 작가의 센스와 유머가 섞인 솜씨로 매우 매력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18살 생일 선물로 부모님께 드릴 옛날 이야기를 쓰고 있는 ‘아름이’. 이미 ‘조로병’ 환자로서는 최고로 오래 산 나이를 살고 있기에 언제 병세가 악화될 지 모르는 상태이다. 하지만, 아름이는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건 바로 책 읽기와 글쓰기이다. 실제 나이는 어리지만, 외형적 나이는 80세 노인 같아서인지 ‘아름이’의 말은 어쩔 땐 노인 같고, 어쩔 땐 아이같이 순수하다. 이런 부분이 참 매력적이었다. 한 평생을 산 노인의 입에서도 듣기 어려운 말을 17살의 입에서 들을 때의 충격은 매우 신선했다.

 

‘아름이’와 ‘서하’의 이메일을 통한 대화에도 공감이 갔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를 이메일을 통해 알게 되면서 생애 처음으로 또래 친구이자 여자 친구에게 갖는 감정을 느끼는 ‘아름이’를 보면서 즐겁기도 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후에 ‘서하’가 36살의 영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에 많이 놀랐다.

 

확실히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으면서 책 속에 푹 빠져 있었다. 읽고 난 지 벌써 2주가 지나가지만 내 마음 속에는 여운이 많이 남아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떠오르는 단어는 ‘감사’이다. 아름이의 삶을 통해 내게 주어진 일상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그냥 주어진 게 아니다. 이 책을 덮으면서 내게 주어진 남은 인생의 순간 순간이 너무 귀하게 여겨졌다.

 

 

책 요약 (배경 지식 포함)

 

 너무 책을 안 읽은 티라도 내듯이 나는 김애란 작가에 대해 몰랐었다. 책 첫 페이지에 있는 작가 소개 중, 이상 문학상 수상이라는 이력이 눈에 띄었다. 제목과 표지에서 느껴지는 ‘두근두근 내 인생’은 뭔가 발랄한 느낌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러한 나의 예감은 처음 아름이의 부모가 고등학교에 철없는 연애 이야기까지만 맞았다. 하이틴 소설처럼 통통 튀는 도입부가 인상적이었다. 

 

 

열일곱의 나이에 덜컥 아기를 갖게 된 두 남녀가 심각한 불안 속에서도 어떻게든 생명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용기 있게 시작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어딘지 모르게 순박하고 어설퍼 보이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그 가운데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태어난 아이가 있다. 누구보다도 밝고 씩씩한 아이,  ‘아름’이는 어린 나이에 누구보다 빨리 늙어버리는 병, ‘조로병’에 걸리고 만다. ‘조로병’에 걸린 ‘아름이’를 중심으로 그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통해 인생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답, 생각할 거리를 준다.

 

‘조로병’에 걸린 시한부 아이의 삶과 그 가족 이야기 라는 생각을 하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설정에 신파극 분위기가 나서 소설에 큰 매력을 못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의 가장 큰 강점은 17살 ‘아름이’의 시각으로 본 인생 전반에 대한 통찰이지 않을까 한다. 바쁜 일상에 그냥 무심히 넘어가고 마는 소중한 마음과 감정들을 이 책을 보면서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교훈적이거나 상투적이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처럼 글이 눈에 쏙쏙 박혀 읽게 되었다.

 

 

작가의 의도?

 

주인공 ‘아름이’의 상황에서 바라보면, 인생에 두근거림이 정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 때문에 항상 모자와 마스크를 하고 다녀야 하고, 또래 친구도 없다.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웃에 사시는 예순의 장 할아버지 뿐이다. 병원비 때문에 힘들게 사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에 좌절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름이’는 확실히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인물이고, 닮고 싶은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상황은 최악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감사할 거리를 찾아내고 좋은 점을 보려고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남들처럼 건강에 무지한 인생이 아니라 건강을 항상 조심해야 하기에 지금 주어진 삶을 더욱 귀하게 여긴다.

너무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살면서, 오늘과 내일의 차이를 못 느끼고 사는 적이 많은

나 같은 직장인에게...

이 소설은 말라버린 감정을 다시 촉촉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루하루가 너무 귀하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내게 허락됨에 감사함을 느낀다.

 

인상 깊었던 구절

 

P79.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P86. “처음엔 재미로 그런 건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가 나를 안 찾더라고. 장롱 안에서 나는 설레어하다, 이상해하다, 초조해하다, 우울해하다, 나중엔 지금 나가면 얼마나 민망할까 싶어 그냥 거기 그대로 있게 되고.”

 

P89. 그저 소박하게 ‘과거에 일어난 일을 그대로 기록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건데, 막상 쓰다보니 더 재밌게, 또 맛깔나게 쓰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글쓰기는 매순간이 결정과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걸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야기는 중간중간 자주 멈췄다.

 

P96. 나는 지금도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는 말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적어도 마음이 아프려면, 살아 있어야 하니까.

 

P97. 나는 건강에 무지한 건강, 청춘에 무지한 청춘이 부러웠다.

 

P129. ‘한번에 한 사람이 된다는 건 충분히 좋은 일’

 

P171. “제 눈에 자꾸 걸렸던 건 거기서 떨어진 친구들이었어요. 결과를 알고 시험장 문을 열고 나오는데, 대부분 울음을 터뜨리며 부모 품에 안기더라고요. 진짜 어린애들처럼. 세상의 상처를 다 받은 것 같은 얼굴로요. 근데 그 순간 그 애들이 무지무지 부러운 거예요. 그들의 실패가.”

 

P182. 우리는 이해라는 단어의 모서리에 가까스로 매달려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인간은 이렇게 이해를 바라는 존재로 태어나버리게 된 걸까?

 

P251. ‘나는 언제부턴가 주위의 풍경과 사물들을 늘 마지막인 것처럼 보게 됐어. 그건 다시 말해 그것들을 늘 처음 보는 것처럼 본단 뜻이지….’

 

P251. 나는 편지를 쓰는 일보단 답장을 기다리는 일이 훨씬 더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신은 혼자 할 수 있는 거지만, 수신은 그렇지가 못했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적어도 그렇게 둘 이상이 있어야 하고, 받는 사람이 최소한 자기가 무얼 받았는지 알아차려야만 가능한 일이 바로 ‘소통’이었다.

 

P269. ‘너는 아프기 전 네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가져본 걸 그리워하는 사람과 갖지 못한 걸 상상하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불행한지 모르겠어. 하지만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전자일 거라고 생각해.

 

P299. “… 나이란 건 말이다, 진짜 한번 제대로 먹어봐야 느껴볼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거 같아. 내 나이쯤 살다보면…음, 세월이 내 몸에서 기름기 쪽 빼가고 겨우 한줌, 진짜 요만큼, 깨달음이라는 걸 주는데 말이다, 그게 또 대단한 게 아니에요. 가만 봄 내가 이미 한번 들어봤거나 익히 알던 말들이고, 죄다.”

 

P318. ‘…어릴 때 나는 까꿍놀이라는 걸 좋아했대. 아버지가 문 뒤에서 ‘까궁!’하고 나타나면 까르르 웃고, 감쪽같이 사라진 뒤 다시 ‘까궁!’하고 나타나면 더 크게 또 웃었다나봐. 그런데 어느 책에서 보니까, 그건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억을 저장하는 거라더라. 그런 걸 배워야 알 수 있다니. 그렇게 작은 바보들이 어떻게 나중에 기술자도 되고 학자도 되는지 모르겠어. 나는 처음부터 내가 나인줄 알았는데, 내가 나이기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손을 타야 했던 걸까. 내가 잠든 새 부모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하면 가끔 놀라워.

 

 … 오늘은 네게 꼭 할 말이 있어 편지를 써. 어쩌면 앞으로 네게 메일을 못 보내게 될지도 몰라. 며칠 전 나도 중환자실에 들어오게 됐거든. 그렇지만 다시 나갈 때를 대비해 이곳에서 나, 항상, 네게 쓸 편지를 궁리해두고 있을게. 그리고 이곳을 벗어나면 제일 먼저 너에게 소식을 전할게. 그러니 당분간 내가 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까궁’하고 짓궂게 사라진다 해도, 어릴 때 우리가 애써 배운 것들을 잊지 말아줄래? 그사이 나는 네게 들려줄 얘기들을 계속 모아두고 있을게. 그리고 언제고 너의 행운을 빌게. 그럼 또 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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